Page 63 - 건축구조 Vol. 29 / No.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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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을 살아보니…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선생과 함께 이란 엑바탄 프로젝트를 위                  구조기술사는 “건축디자인은 독특하고 아름답지만, 구조적으로 풀 수
            해 테헤란에 출장 갔을 때, 긴 비행의 여독으로 늦은 시간 숙소에 도착하면             없습니다. 디자인을 현실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라는 말을 되도록 하지
            나는 피곤함과 다음 일정을 위해 잠을 청하기 바빴는데 선생은 피곤한 중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에도 당신이 보고 싶었던 명작 영화를 호텔방에서 감상하시고 다음 날 거                 내가 구조기술사와 건축사이기 때문이고 나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 누구
            뜬히 일정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의 예술에 대한 열정에 감탄했습               보다도 잘 압니다. 건축구조기술사로서의 구조적인 한계도 이해하고, 건
            니다. 참으로 그는 멋을 아는 건축가요, 진정한 예술가였습니다.                   축디자이너로서의 열정과 욕심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김수근 선생의 경동교회나 올림픽 실내체육관의 구조 설계를 하면
                                                                  서 “이건 구조적으로 힘듭니다. 디자인을 좀 바꾸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절대 한 적이 없습니다. 선생의 디자인이 구조적으로 좀 무리가 있어도 보
                                                                  여도 “ 한번 고민해서 해결해 보겠습니다” 하고 연구하고 고민하며 결국은
                                                                  해결해 낸 기억이 많습니다.


                                                                    우리 후배 구조기술사들이 이점을 반드시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건축사법 개정으로 엔지니어링 토목회사와 건축사사무소의 겸업
                                                                  을 할 수 없게 되어 1978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건축부원들과 함께
                                                                  ㈜한국종합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습니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서 독
                                                                  립했기에 한국종합이라는 사명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었고, 사명(社命)
                                                                  이 비슷하여 헛갈려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나의 뿌리를 기억하게 하는
                                                                  이 사명(社命)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국종합건축사사무소는 현재
            [사진 3] 이란에서                                           500여 명의 사원들이 근무하는 매우 탄탄하고 실력 있는 중견 건축사사무
                                                                  소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본의 겐죠당게 선생을 존경합니다. 특히 동경의 국립 요요기 올                 내가 철도청에서 근무했기에 철도역사, 차량기지, 변전소 등 운전보안
            림픽 체육관은 참으로 걸작입니다. 구조기술사로서의 시각으로 보니 겐죠                시설 프로젝트와 초창기 서울지하철 1호선~9호선, 신분당선을 비롯해 부
            당게 선생의 독특한 디자인을 풀어내었던 구조기술사 또한 존경스럽습니                 산, 대구, 광주 등 많은 지하철역사 및 운전보안시설을 설계, 감리하였고,
            다. 그는 우리 구조기술사들의 롤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구조설계               최근에는 도화 엔지니어링과 함께 GTX-A 노선의 5개 역사 공동프로젝트
            와 더불어 건축설계도 60여 년 넘게 했습니다. 구조기술사는 건축가의 꿈              를 수행했습니다. 한국종합건축사사무소는 오래전부터 당시 체신부의 우
            과 철학을 품은 독창적인 디자인을 반드시 실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               체국, 우편집중국시설, 전화국의 프로젝트를 전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다고 생각합니다.                                             닐 정도입니다.
                                                                    요즈음에도 한국종합건축사사무소는 아파트 재개발, 재건축과 리모델
                                                                  링 분야에서 대한민국 1~2위를 다투며, 다수의 물류창고, 해외사업도 매
                                                                  우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나는 20대부터 80대까지 쉼 없이 일했고 2018년 86세 나이에 후배들에
                                                                  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습니다. 실로 60여 년 넘게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여유있게 쉬며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의 서울대 건축과,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건축부 이사, 한국종합건
                                                                  축의 창업자, 대표로서의 삶의 여정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이기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성실히 그리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어쩌
                                                                  면 용장은 아니었을지라도 덕장과 지장은 되었을 것이라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사진 4] 요요기 국립체육관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지      Journal of  The Korea  Structural  Engineers Association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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