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건축구조 Vol. 29 / No.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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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뒤척이고 생쥐가 귀를 세우며 마루 위의 비밀소리를 엿듣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의 풍광을 집안으로 넉넉히 끌어들이고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교
             툇마루는 사색의 마당이다. 천지가 어둠에 갇히는 칠흑의 밤에 툇마루                류의 장소이기도 하다. 쇠 지팡이에 몸통을 지탱하고 앞마당에 힘겹게 서
            에 앉으면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린다. 오감 중에서 가장 기가 센 시각이 막             있는 소나무가 시야를 가리지만, 한때는 솔바람과 대화하며 시상을 읊조
            히면 청각과 후각이 생기를 띄며 어둠을 밝힐 수 있다. 명상을 할 때나 냄             리지 않았을까. 주인은 누마루의 난간 기둥을 붙잡고 서서 먼 하늘을 바
            새를 맡을 때 눈을 감지 않는가. 지나간 시공을 회상할 때도 눈을 감고 마             라보며 난세에 한숨도 깊었으리라. 다른 마루보다 조금 높게 앉은 누마
            음속 눈동자로 보아야 선명해진다. 어둠 속에서 볼 수 없는 어제의 모습도              루지만 집에서는 동등한 자리로 한 몸처럼 뼈대를 이루고 있어 더욱 빛이
            툇마루 위의 달빛 속에서는 또렷이 보인다.                               나는 듯하다.
             집 옆면과 뒤편에 기둥 밖으로 튀어나온 쪽마루가 앙증맞다. 방문을 열                 양옥의 거실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이기적인 삶에 젖어 사는 현실에 마
            고 바로 발을 내려놓을 수 있는 간이 마루지만 동바리마다 옹골찬 기운이               루의 기억이 퇴색되고 있다. 한옥의 마루라는 열린 공간에서 자연과 소통
            서려 있다. 햇빛 따스한 봄날, 쪽마루에 걸터앉아 후원의 봄기운을 느끼고              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대의 여유로운 생활상이
            꽃밭에 활짝 핀 꽃잎을 바라보며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정겨운 마루다. 지              반짝이며 다가온다. 집의 가장 높은 곳에 앉은 지붕의 용마루가 먼 산의 고
            나던 길손이 땀을 닦고 비를 피하던 휴식의 자리이기도 하다. 쪽마루에 봇              갯마루를 넘는 구름의 흐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에게는 낮은 곳에 머물
            짐을 내려놓고 마을의 소문을 들으며 세상을 살피던 사랑마루이다. 이곳에               라 한다.
            서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형체가 앞산 나뭇가지의 흔들림으로 나타나 보이
            고 구름의 흩어지는 모습으로 가는 곳을 알아챈다.
             고고히 솟은 누각처럼 다른 마루보다 한 자(30cm)이상 높게 단을 둔 누
            마루가 위엄을 보여준다. 집의 방향을 뒤틀어 꺽여진 한 칸의 공간이 삼면
            을 열어놓고 자연을 관조하는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섬돌도 없고 마당에
            서 바로 오르지 못하는 권위의 마루이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지      Journal of  The Korea  Structural  Engineers Association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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